[NDC 26] AI 시대, 게임 업계의 경쟁력은 시간이 쌓은 '맥락'

넥슨코리아 강대현 공동 대표이사 키노트
2026년 06월 16일 12시 32분 03초

16일 오전, 2026년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26)가 넥슨 판교 사옥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개최됐다. 넥슨코리아 강대현 공동 대표이사는 앞서 진행된 넥슨 이정헌 대표이사의 환영사에 이어 키노트 '구현이 쉬워지는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경쟁하는가'의 연사로 나섰다.

 


넥슨코리아 강대현 공동 대표이사​

 

키노트 발표에서 강대현 공동 대표이사가 던지는 큰 질문은 그가 8년 전 키노트 무대에서 던진 것과 비슷하다. 당시 그는 즐거움을 향한 항해란 제목의 발표에서 조금 부끄러운 고백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한때 컬링을 참 재미없는 스포츠로 여겼고, 룰을 모르겠고 해설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며, 응원할 팀도 없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컬링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달라진 것은 오직 맥락이었다. 응원할 팀이 있었으며 손에 땀을 쥐는 역전 드라마, 다같이 외칠 수 있는 영미라는 이름이다.

 

그는 이에 착안해 당시 라이브게임 데이터를 열어보고 흥미로운 것들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전했다. 게임의 만족도를 가르는 것은 흔히 구현이라 부르는 그래픽, 사운드, 룰 같은 정적 요소만이 아니라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건을 겪느냐는 동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8년 전에 그가 내린 결론은 재미의 본질이 구현 바깥에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 그가 가져온 질문은 같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둘러싼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다. 2018년엔 구현 바깥에도 존재하는 본질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족했으나, 2026년에는 구현이라는 장벽 자체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본질은 어디로 가는가? 강대현 공동 대표이사는 발표를 통해 이를 다뤘다.

 

구현이 쉬워진다. 이것은 단순히 듣기 좋은 구호가 아닌 당면한 사실이다.

 

넷플릭스를 켜고 뭘 볼지 30분 내내 스크롤만 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끄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볼 것이 없는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그렇다. 선택지가 폭발하면 오히려 고르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런 현상이 게임 산업에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스팀에 출시된 신작의 수는 약 2,800여 개였다. 2025년에는 20,000개로 10년 만에 약 7배가 늘엇다.

 

그런데, 이 20,000개의 신작 게임들 중 리뷰 1,000개를 넘기며 폭넓은 주목을 받은 게임은 608개에 그친다. 전체의 약 3%에 불과한 수치다. 공급은 폭발하는데 유저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다. 그러니 넷플릭스 스크롤과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다른 사례를 보자. 지난 2024년 PC와 콘솔 플레이타임의 57%는 신작이 아닌 출시 후 6년이 지난 게임에 집중됐다. 플레이어 절반 이상이 신작이 아닌 기존 게임으로 흘러가면서 신작으로 돌아갈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흐름 또한 같은 것을 말한다. 스팀 동시접속자 수는 올해만 세 차례 기록을 갈아치우며 지난 3월 이용자 수 4,200만 명을 넘어섰다. 업계 추정으로는 지난해 매출 또한 사상 최대였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게임분야의 초기단계 투자는 최근 수년 내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시장은 커지는데 성공의 문이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 AI가 더해진다. 코드를 더 빨리 짜고 이미지를 더 빨리 그리며 프로토타입도 빠르게 뽑아준다. 정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모두가 쉬워진다는 사실이다.

 

AI로의 전환을 산업혁명에 비유하는 이유는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18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석탄문제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짚은 바 있다. 증기기관의 효율이 좋아지면 석탄을 덜 쓸 것이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석탄소비가 폭증했다는 것. 효율이 좋아지니 그전엔 엄두도 내지 못한 산업까지 모두 증기기관을 도입한 결과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일이 쉬워진다고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판이 커지고 경쟁의 공간이 바뀐다. 누구나 쉽게할 수 있게 된 일은 더이상 우열을 가르지 못하고 경쟁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게임 업계도 이미 여러 차례 겪어본 일이다.

 

처음에는 엔진의 경쟁이었다. 그러다가 사용 엔진이 보급됐다. 제작비가 줄었을까? 아니다. 엔진으로 우열을 가리지 못하게 되니 아트와 컨텐츠 등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만들기 쉬워지면 더 정교하게 만드는 쪽으로 경쟁이 옮겨간다.

 

다음으로 디지털 유통의 보편화로 누구나 게임을 낼 수 있게 되자 20,000개의 게임 속에서 눈길을 얻을 수 있는 브랜딩 등이 가장 치열한 싸움터로 변했다. 수많은 경쟁들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구현이 쉬워지는 시대'에 무게중심은 어디로 이동할까.

 

강대현 공동 대표는 '맥락'의 이동이라고 진단했다. 구현의 수준이 아닌 깊이를 경쟁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범용 AI에게 메이플스토리 캐릭터에게 씌울 귀여운 모자 하나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럴듯한 모자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맥락 위의 AI에서는 20년간 쌓인 메이플스토리의 스타일과 취향 위에서 나온 메이플스토리다운 모자가 나온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맥락이며 맥락은 깊은 이해 안에서 만들어진다.

 

스타일가이드처럼 데이터가 옮길 수 있는 영역은 앞으로 점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저와의 신뢰 같은 맥락은 그렇지 않다. 그는 경쟁력이 이 차이를 만드는 쪽에 실린다고 전했다.

 

그는 시간이 쌓아올리는 것을 맥락자본이라고 정의했다. 맥락자본은 만드는 쪽과 즐기는 쪽 모두에게 쌓이는 것이다.

 

만드는 쪽 입장에선 개발자가 수십 년 동안 한 우물을 파며 쌓은 장르의 이해와 미학이 맥락자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라리안, 프롬소프트웨어, 닌텐도 등의 게임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라이브 게임의 경우 여기에 운영 데이터, 밸런스, 노하우 등의 경험도 더해진다

 

즐기는 쪽의 맥락자본은 유저들끼리 맺은 관계, 커뮤니티가 함께 기억하는 사건,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감정 등을 꼽을 수 있다. 언더테일 팬 이론, 다크소울의 YOU DIED, 젤다의 전설 스피드런 문화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맥락의 깊이는 프롬프트로 만들 수 없다. AI 모델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간이 쌓은 맥락은 돈만으로 살 수 없다. 이것이 AI 시대의 진짜 자본인 맥락자본이라는 것.

 

금융 개념인 단리와 복리로도 예시도 이어졌다.

 

같은 20년을 만들어도 두 스튜디오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경험이 누적되고 이어지는 것에 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단리는 다음 작품으로 경험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에 가깝다. 반면 복리는 전작의 경험이 다음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즐기는 입장에선 게임 안에서의 경험이 밖으로 번져나간다. 이자가 다시 이자를 만드는 구조다.

 

복리의 예시를 들어보면, 어느 던전 보스에게 계속 죽는다는 데이터가 있다. 숫자로만 보면 단순한다. 너무 어려우니 난이도를 낮추고 끝이다. 그러나 여기에 커뮤니티의 맥락을 겹쳐보면 다르다. 유저들이 공략을 나누고, 클리어 영상을 자랑하고, 드디어 잡았다며 함께 축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 이상 이 보스는 골칫거리가 아닌 이 게임의 문화가 된다.

 

유적 진짜 사랑한 것은 보스 그 자체가 아니라 도전하고 끝내 해내는 이야기라는 깊은 맥락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음 시즌, 다음 시리즈의 설계 원리로 뻗어나갈 수 있다.

 

이러한 분석 자체는 AI가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결과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사람의 몫이다. 강대현 공동 대표이사가 강조하는 맥락의 연결은 이런 복리처럼 작동한다. 처음엔 더디지만 일정 밀도를 넘으면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구조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이 복리의 구조가 상당히 빠르게 발생한다.

 

또 하나의 예시로, 축구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이라 평생 취미가 되는 것일까? 사실 축구를 취미로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뛰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공을 차다가 빠지는 사람부터 시작해 월드컵을 응원하다, 게임으로 축구를 먼저 접하다가 좋아하는 축구를 더 알아가며 더비전에 담긴 수십 년의 이야기도 알게 되고 점점 빠져들어간다.

 

축구라는 하나의 세계에서는 150년의 경험들이 복리로 쌓여 하나의 세계가 되고 생태계를 구성해 그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아이콘 매치가 우리에게 그토록 큰 감동을 준 것도 같은 이유로 짚을 수 있다.

 

게임의 경우,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구축되면 게임을 즐기고 영상을 보며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하고 친구를 데려오는 모든 경험이 쌓여 이와 같은 세계를 구축한다.

 

 

 

2006년에 출시된 로블록스는 20년이 지난 지금, 하루 1억 3천만이 접속하는 이용자 수 기준 세계 최대의 게임이 됐다. 그래픽이 잘나서가 아니다. 그 안의 맥락, 사람들의 관계와 수많은 창작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마인크래프트도 그렇다. 블록은 단순하나 그 위에 쌓아올린 유저들이 맥락의 복리를 증명하고 있다.

 

2025년 연말, 넥슨의 고객센터로 청첩장 한 장이 도착했다. 운영 중인 한 게임을 5년 동안 즐긴 커플의 이야기가 잠겨있다. 이런 5년의 추억은 넥슨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이 그들의 삶 그 자체에 녹아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한 메이플스토리 유저가 검은보따리 아이템을 획득하고 커닝시티 한복판에서 열었다. 그러자 당시 최강의 보스 몬스터였던 주니어 발록이 나와 아수라장이 됐다. 넥슨이 기획한 것이 아닌데, 유저들에게는 커닝시티 대참사라며 15년 동안 회자되는 사건이 됐다. 그리고 창작 플랫폼 메이플월드의 한 팀이 만든 메이플 랜드에선 이 사건을 재현할 수 있다.

 

이 두 사례는 개발사가 뭘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꺼낸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길을 알려주고, 길드를 만드는 등 유저들은 게임 안에서 살아간다. 이런 것이야말로 게임이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게임만이 가진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세계 안에서 활동하며 쌓고, 바꿔나가는 것을 게임은 유저와 함께 빠르게 이뤄낼 수 있다.

 

강대현 공동 대표이사는 그 어떤 AI도 이런 것은 만들어낼 수 없다고 전했다. 게임은 궁극적으로 쌓은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구현이 쉬워지는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경쟁하는가? 그 질문의 답은 앞서 언급한 복리의 사례를 들었다.

 

끝으로, 그는 두 가지 무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만으론 차이를 내기 어렵지만 강력하고 평등한 무기 Artificial Intelligence, 오직 시간으로만 쌓이며 맥락을 알아본 이들의 복리 맥락자본 Accumulated Intelligence라는 두 가지 무기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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