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틱 드림'은 여러모로 독특한 게임 개발사로 유명하다.
지난 20년간 최근 발매된 '디트로이트:비컴 휴먼'을 포함하여 겨우 5개의 게임을 만들었지만, 다른 개발사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도입하는 실험 정신이 강하다. 실험작이라고 하면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회사의 경우 게임을 발매할 때마다 평단과 대중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퀀틱 드림이 제작한 게임을 접한 사람으로 하여금 개발사 이름을 절대 잊지 않게 만드는 매력도 겸비하고 있다.
퀀틱 드림은 기본적으로 어드벤처를 추구하지만,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접목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첫 작품 '오미크론'의 경우 3D 어드벤처이지만 상황에 따라 FPS, 대전 액션 등 완전히 다른 장르의 형식을 접목해 장르가 결정되면 진행 방식도 함께 결정되는 여타의 게임들과 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했고, ‘인디고 프로퍼시’는 단순히 설정된 주인공이 아니라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조절하면서 수많은 선택을 통해 서로 다른 크고 작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본격 인터랙티브 영화 형식을 시도했다.
퀀틱 드림에게 단순히 실험정신이 우수한 유명 받던 개발사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준 게임은 ‘헤비레인’이었다. 수준 높은 그래픽과 영화와 게임을 넘나드는 집중력 있는 스토리로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대표적인 게임개발사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이다.
헤비레인으로 인지도를 높인 퀸틱 드림에게 디트로이드:비컴 휴먼은 그야말로 전 세계 탑클래스 개발 스튜디오로 거듭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예고편이 공개될 때마다 전 세계 게임 미디어들과 게이머들의 관심은 높아져 갔다.
■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가까운 미래
디트로이트:비컴 휴먼은 2038년 안드로이드 로봇이 인간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단 이 게임의 특징은 대략 네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진행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란 그것도 사람이 아닌 로봇 안드로이드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수리를 받고 주인집으로 가는 가사도우미 로봇 '카라', 유명 화가에게 친아들 같은 사랑을 받지만 그의 아들과는 불화를 겪는 마커스, 로봇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제작사로부터 파견되어 형사를 돕는 코너, 이 세 명의 로봇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 켜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들의 순서가 특정 패턴 없이 스토리가 전개되는 대로 돌아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스토리를 번갈아 이끌어간다. 한 명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것에 비해 산만해질 것 같기도 한 구성이지만 서로 다른 캐릭터의 전혀 다른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세 가지 시점으로 접근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어 전혀 산만하지 않으며 오히려 한 명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진행하는 것에 비해 더 깊이 있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스토리를 끌어가는 각 캐릭터의 거의 모든 주요 행동은 게이머가 제어해야 한다. 포인트 앤 클릭이라든가 조금 다른 형식의 어드벤처 게임 또는 보다 많은 액션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다른 장르의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게임 속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게 규정이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동, 보기, 대화하기, 조사, 인벤토리 아이템 조합 정도를 주로 사용하는데 사소한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까지 모두 게이머가 직접 컨트롤해야 한다.
게임이 시작된 후 튜토리얼로 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모든 것이 번거롭고 불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게임 속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가 컨트롤러를 잡고 있는 게이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즉 감정이입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게임 속 캐릭터가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는 부분에서는 컨트롤러를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고, 다급한 상황이 되면 컨트롤러 조작에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
캐릭터를 움직이는 방법은 오른쪽 아날로그 스틱 조작, 아주 약간 여유가 있을 수도 또는 없을 수도 있는 특정 버튼 입력,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에서 여러 개의 버튼을 순서대로 누르는 조작, 그리고 컨트롤러 센서를 이용하는 정도로 조작 방법 자체는 제한적인 편이지만 그러한 조작으로 행하는 게임 속 주인공의 행동은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아주 작은 것부터 위험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동작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감정 이입이 가능한 이유가 컨트롤러 조작 방식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그에 맞는 매우 적절한 화면 연출과 음향 효과가 동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감정 이입에도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다음 순서가 될 진행에 극도의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세 번째 특징인 수많은 선택을 꼽을 수 있다. 선택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선택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상황이 도래했을 때 '이것이 선택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캐릭터가 취한 행동에 따라 즉석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오랫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고, 너무 사소한 것이어서 '이건 그냥 하면 되는 건가?'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아! 그때 이걸 이렇게 했다면 과연 다르게 됐을까?'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까지 합쳐 분기가 존재하는 게임 수백 개를 한꺼번에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많은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런 이유로 한 번 엔딩을 보고 난 뒤에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엔딩 직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단한 반전이 숨겨져 있어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재미있다고 하면 수십 번 다시 감상해도 물리지 않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쉽게 납득할 만한 그런 특징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는 영화와 달리 선택을 직접 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 어떤 게임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실에 가까운 그래픽으로 진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특히 동작이 계속 이어지는 부분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거나 버튼 입력을 요구하더라도 동작이 끊어지는 일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게 했는데, 버튼 입력에 실패하더라도 그로 인해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생긴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놀라운 수준이다.
이와 함께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연민' 또는 '감정이입'이다. 몰입감 있는 스토리, 화려한 그래픽, 흥미로운 선택이 종합되다 보니 게이머가 캐릭터에 느끼는 감정이입은 최고수준에 달한다.
퀸틱 드림이 지금까지 출시한 모든 게임이 '감정이입'이 훌륭한 게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디트로이트:비컴 휴먼'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작사는 전작인 헤비레인처럼 게이머의 감정선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서 불편하고 피곤한 감정을 느끼는 수준까지 가게 만들지 않는다.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이 게임에 그런 헤비레인 수준의 자학 액션을 넣었다만 아마 상당수 게이머가 게임을 하는 중 진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지는 선택의 가벼움
여러모로 칭찬 일색으로 이어지기는 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집중력 있는 스토리이긴 하더라도 게이머에게 억지로 선택을 강요하는 느낌도 자주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택을 완전히 다르게 했을지라도 실제 그 결과가 큰 차이점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과연 이러한 선택을 왜 만들었는지도 의문 나게 하는 장면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게임 후반부에 상대방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아끼는 누군가를 죽이라고 하는데 죽이지 않고 답을 얻지 않기로 진행했다가 바로 로딩 화면으로 들어가서 그를 죽였지만 답변은 죽일 때나 안 죽을 때나 비슷했다. 그때 밀려오는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 거의 모든 것이 완벽한 게임
한글화의 경우 아무리 잘된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몇 차례의 오탈자 문제가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워낙에 흔한 일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 있는 허용 범위를 설정해 놓으면서도 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것에 비하면 이 게임의 한글화는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여서 그 어떤 한글판 게임보다도 만족도가 높다. 또 게임 설치를 시작하는 시점에 자막을 설정할 수 있게 해놓아 처음부터 실수로라도 자막 설정을 하지 않아 놓치게 되는 일도 경험할 수 없게 했다.
기승전결이 완벽하면서 원인과 결과의 연결 고리에 전혀 문제가 없는 탄탄한 스토리라인이 있는 게임의 경우 엔딩을 보고 나면 '잘 만든 영화 한 편 감상한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디트로이트:비컴 휴먼의 경우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재차 진행하게 되면 영화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담아낸 진정한 인터랙티브 무비임을 실감하면서 '영화'라는 대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엔딩 직후 다시 진행해 봐야만 완전히 차별화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게이머의 선택에 의해 경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게임은 누구라도 엔딩 직후 자연스럽게 '새로 시작' 메뉴를 건드릴 것으로 확신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으로 착잡하게 만든다거나 슬픈 느낌을 받게 되는 게임은 종종 있지만 게임 속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아 함께 아파하고 초조해하고 고민하게 하는 게임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김성태 / mediatec@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